일기 | 당신의 엄마는 안녕하십니까? 세번째 이야기

당신의 엄마는 안녕하십니까? 세번째 이야기


우리 엄마는  2년전에 어깨 수술을 하셨다. 아빠의 병간호를 하시다가 어깨 인대가 파열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심하셔야 한다. 

딸이 미국에서 왔다. 엄마는 뭐라도 해주고 싶으셨겠지. 그런데다가 딸이 오자마자 아파서 입원을 해야할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수술이나 입원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약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우신염에 뭐가 좋은지 열심히 검색을 하고 장을 보러 갔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있었고 부모님은 산책을 하신다고 나가셨다. 한참 후에 아빠가 혼자 돌아오셨다. 골수암이 척추에 생겨 척추 수술을 하셨던 아빠는 걷는 것도 힘드셨다. 지금은 그래도 혼자 걸을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되셨지만 오래 걷지는 못하신다. 엄마는 시장까지 가신다고 해서 아빠는 중간에 돌아오셨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 댁은 4층인데 엘리베이터가 공사중이라 걸어서 계단을 오르내리시니 그것이 가장 큰 운동이다. 조금만 걸어갔다 오셔도 다시 4층을 걸어올라오셔야하니 힘이 드신 것 같다. 그렇게 먼저 집에 오신 아빠가 앉아서 쉬시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장바구니를 가지고 나오라는 것이다. 아빠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 나가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신다. 나는 쉬어야하지만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내가 장바구니를 끌고 나갔다.

엄마가 너무 많이 무거운 것을 가지고 걸으시면 안되는데... 서둘러 나갔다. 저멀리에서 엄마가 걸어오신다. 화가나기 시작했다. 아니 무거운 거 들으면 안된다면서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오신다. 나를 보시더니 얼른 내려놓으신다. 끌고간 바구니에 옮겨 담는데 엄청 무겁다. 양파가 좋다고 양파 한봉지, 아빠가 샤인 머스켓을 드시고 싶다고 할 때, 나는 못먹어봤다고 했더니 그것을 사신 것 같다. 무거운 봉투를 옮겨 담고 끌고 오는데 화가났다. 누가 먹고 싶다고 했나. 왜 고생을 사서하시나. 그리고 또 밤새 아프다고 하실 것 같았다. 말을 꺼내면 화를 낼 것 같아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앞서서 걸었다.

문제는 집에 올라오는데 그냥 내가 들고 올라오는데 자꾸 같이 들자고 밑에서 장바구니를 드신다. 그냥 두라고 하다가 화를 냈다. 그리고 내가 혼자 번쩍 들고 올라왔다. 무거웠지만 장바구니보다 내 마음이 더 무거웠다. 화를 내는 나도 싫었다.

장바구니를 주방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아프다면서 저렇게 고생을 사서하는 엄마 때문에 속이 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고생하시고 계신 것을 아는데. 더구나 미국서 온 딸이 아프니 더 신경쓰고 힘드신데.

방에 들어와서 누웠다. 아직 오한이 남아서 춥기도 했고. 이불을 쓰고 누웠는데 눈물이 난다. 한참을 울면서 내가 왜 우는지 생각했다. 왜? 나는 왜 화가나는가? 왜 속이 상한가? 엄마의 삶의 모습이 속이 상하다.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가족을 챙기는 모습에 고마운게 아니라 속이 상했다. 그리고 화가났다. 당신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이 나는 화가 났다. 밖에서 엄마가 포도를 먹으라고 부르신다. 아빠가 방문을 살짝 열고는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신다. 잠시만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왜 속상한지 왜 화가나는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했어야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아까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속상해하고 화내지 않고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엄마의 장바구니를 받으며서 아이고 무겁네. 고생하셨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한참을 울었다. 그때 내 마음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가족들을 위한다고 잠도 못자고 김밥을 싸기도 하고, 새벽에 일어나서 아들한테 가져갈 음식을 준비하기도 하고, 어쩌다 집에 오는 아들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 먹이려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나에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힘들까봐 아들은 자기가 하려고 했고 나는 내가 하겠다고 아들을 쉬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아들하고 부딪히기도 했다. 가만히 있으라고... 서로 도와주려다가 서로 마음이 상했던 것들...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든 몸으로 왜 그랬을까? 엄마라서...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잘 먹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받는 자식 입장에서는 엄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자신이 해주는거 고맙다고 받아주는 것을 원했구나. 내가 우리 엄마한테 원하듯이.

그리고 반대로 엄마인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힘들어도 차려주는 것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바라는 것은 그저 고맙다고 맛있게 먹는 것이다. 고맙다... 나의 존재의 이유를 거기에서 찾았던 것이다. 요즘은 내가 다른 일로 바쁘다보니 못한다고 하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그렇다. 내가 우리 가족들에게 하는 것처럼 엄마가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럼 엄마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잘 받아먹고 고맙다고 하는 것이다. 엄마가 수고가 많다는 것을 알아드리는 것이다. 그래 그저 감사하다고 했으면 될 것을... 엄마를 걱정한다고 오히려 속상해하고 화를 냈다. 나는 엄마이기도하고 딸이기도 하다. 엄마로서는 자녀들에게 미안했고, 딸로서는 엄마에게 죄송했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 나는 반대로 하고 있었다.

그때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아픈데 왜 돌아다녔냐. 엄마가 알아서 하시게 그냥 두어도 된다.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고 그냥 하시고 싶은대로 하게 두어라.... 부모님과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동생이 터득한 삶의 방법, 부모님을 대하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을 걱정하기 전에 내 몸을 먼저 돌보라고 동생의 긴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다. 내 자녀들을 위한 것이고, 남편을, 부모님을 위한 것이다. 나부터 돌보자.

나는 이렇게 나 자신과 부모님, 특히 엄마를 애도했다. 데리다의 말처럼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계소고되어야하는 삶의 애도. 나는 이미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죄책감이 아닌 삶의 귀한 한 부분임을 인정해야겠다. 그 애도를 통해 나를 사랑하고 엄마를 사랑하고 가족을 이웃을 사랑하는 원동력을 얻는다.

우리 엄마, 나의 엄마는 안녕하시다. 내 마음에서 조금더 자유롭게 해드리자. 

눈물을 닦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샤인 머스켓을 처음 먹어보았다. 사실 맛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비쌀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엄마의 사랑, 그 속에 엄마도 나를 향한 애도가 있음을 발견한다. 아빠를 향한 애도가 있어서 그렇게 잔소리하고 걱정하신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좀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도하고 싶다. 그렇게 엄마로서 엄마의 마음을 본다.

그래도 울 엄마, 너무 무리하지 않으시길 바라면서.

사랑해요. 엄마. 그리고 아빠. 좀더 건강하게 오래사시면 좋겠어요.










일기 | 당신의 엄마는 안녕하십니까? 두번째 이야기

당신의 엄마는 안녕하십니까? 두번째 이야기

세브란스 구강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한주간 가글제를 사용하고 다시 보기로 했다.

몇년째 같은 자리에 염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몇년전에 조직검사했던 부분은 잘 아물었는데 다른 자리에 다시 빨갛게 상처같이 되면서 한부분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음식도 조심하고 매운 것은 먹지 않은지가 몇년째이다. 김치도 거의 안먹는다. 

미국에서 이비인후과에서도 봤지만 가글제 처방 말고는 없다. ENT(미국 이비인후과) 의사중에 head and neck cancer 를 보는 의사한테 가야한다고 친구가 알려줬다. 그 친구는 구강암 진단을 받고 혀를 절제하고 어려움을 겪었다. 그 친구는 작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천국에 갔다. 잘 회복되는 줄 알았는데...

여튼 ENT 의사를 만났더니 조직검사를 하자고 한다. 비용도 그렇고 그럴바에는 전에 검사했던 한국을 다녀오는 것이 시간과 비용에거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나이 50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때였다. 말을 해야하는데 혀를 조직검사하면 혀의 일부를 떼어낸다. 통증은 둘째치고라도 말하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때로는 무모한 선택을 할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1년 반 그냥 지냈다. 기도하면서 설교하면서... 감사하게도 그 시간에는 통증도 잊었다. 하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혀의 염증은 조금 더 커졌고 그 주변부는 빨갛게 화끈거렸다.

중요한 인터뷰가 끝났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여름부터는 더 바빠질 것이 예상된다. 그래서 미뤘던 일을 하기로 했다. 가장 첫번째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미뤘던 혀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1년 반동안 특별히 기도하는 관계가 생겼었다. 알지도 못하던 분이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일주일에 두번씩 우리는 카톡으로 전화를 하며 기도했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나를 만져주셨다. 용기를 주셨다.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게 도와주셨고 치유에 대한 확신도 주셨다. 그리고 목회를 할 담대함을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알고 있었으나 확신하지 못했던 그 사랑에 온전히 나를 맡기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남편은 무조건 찬성. 그래서 갑자기 준비하고 교회에 병가와 휴가를 신청하고 짐을 챙겼다. 어느새 고등학교 주니어가 된 딸은 무덤덤하게 잘 다녀오라고 했다. 마음은 쓰였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어른스러운 척을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 그리고 구강외과에서 일주일 항생제 가글을 사용했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보겠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몇번의 경험으로 얼마나 아픈지 또 얼마나 조심해야하는지 알고 있다. 

인턴이 마취 주사를 혀에 놓는다. 엄청 아프다. 입을 헹구니 핏물이 흥건하다. 그렇게 마취하고 대기. 그 시간이 가장 떨렸다. 남편과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나도 기도했다. 떨리던 손도 그리고 마음도 진정이 된다. 하나님, 그냥 되어지는 일은 없잖아요. 용기를 주시고 담당 의사와 인턴들과 간호사들에게도 지혜와 실력을 주시고 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 생각해보니 오늘 나를 위해서 저들이 오랜시간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왔네요. 

그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평안한 마음으로 조직검사를 받았다. 혀를 베어내고 꼬매는 느낌은 있었지만 마취제의 도움으로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혀를 잘 빼고 있어야 할테니 최대한 메롱을 잘하고 긴장하지 않으려 애썼다. 잠시 후 다 되었다는 의사의 말고 일주일 후에 결과 나오면 보자는 말을 들었다.

대학 병원에서 교수를 돕는 인턴, 레지던트들이 보인다. 그들의 긴장감도 보인다. 환자들에게는 의사 선생님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학생이다. 아들이 미국에서 치과대학을 가기위해 시험을 봤었다. 좋은 성적을 얻었으나 확신이 없어서 취업을 했고 그 일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치대생들과 의사들이 기특하다. 고맙다. 여튼 그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잘 치료를 받는다.

병원비.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으면 한국에서 의료보험을 받을 수 없다. 편법으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 한국여권으로 출입국-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불법이다. 여튼 이번에는 무보험을 병원을 다닌다. 병원비가 비싸다. 한국 국민일 때는 몇 만원 하던 진료비와 검사비가 이제는 몇 십만원이다. 한국은 의료보험이 잘 되는 나라구나. 병원비를 낼 때마다 직원들이 꼭 확인한다. 비급여입니다. 본인 부담입니다. 보험이 없어서 비용이 비쌉니다. 할부로 할까요? 이것이 마지막 질문이다. 할부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어쨌든 나는 아무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 카드가 되니 감사하다. 일시불로 결제한다. 옆에서 보는 엄마는 병원비가 비싸다고 놀라신다. 결제하는 직원들도 괜히 미안해하곤 한다. 비싸긴 하지만 미국에서 보험적용해서 의사보는 비용보다 싸다. 물론 검사 등은 좀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보다 싸다.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몇천원 나왔다고 큰소리가 오가는 것을 본다.

미국에서 나는 보험가입자다. 보험도 좋은? 것이라 보험료도 비싸다. 그리고 패밀리 닥터라고 하는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으면 150불 정도 낸다. 한국 돈으로 요즘은 20만원 쯤 되려나? 그러다가 무슨 검사를 해야한다고 하면 몇백만원이다. 그러니 한국으로 진료를 받으러 올만하다.

남편이 임플란트를 해야하는데 6000불이라고 해서 못하고 있다. 한국에 몇번 다녀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가격만 차이가 있으면 해볼까 했는데 실력도 차이가 있다고들 한다. 특히 치과는...

어제 혀를 도려내는 조직검사를 했다. 검사비용이 20만원이 조금 넘었다. 비싸네. 그리고 미국을 생각하니 음, 그냥 의사 얼굴본 비용이구나. 그래서 다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결과가 별 이상 없기를 기도한다. 검사할 때마다 만성염증이라고 했는데 완벽히 치료가 되지 않아서 또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 깨끗하게 된 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만 말하고 살고 싶다. 그렇게 약속한다. 

한국에 와서 혀 치료를 받으면 한국 음식을 못먹어서 아쉽다. 그래도 빠른 검사와 치료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 극명한 사실이다. 데리다가 말한 더블 제스쳐. 

한주간 신우신염 마저 잘 치료되도록 약을 먹으면서 푹 쉬려고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쉼이라고 하신다. 쉼. 몸도 쉬고 마음도 쉬자. 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님을 돌봐드리고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못해서 다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잠시 머무는 동안 오히려 부모님의 리듬을 깨뜨릴 뻔 했다. 두분이 하실 수 있는 것을 하시면서 또 하실 수 없는 것을 인정하시면서 살아가셔야 한다. 나는 그저 두분을 만나 감사하고 반가운 그 시간만 보내면 된다. 그래서 이번에 아픈 것이 또한 은혜이고 감사이다.

우리 엄마, 생각보다 늙으셨다. 그래도 여전히 새벽마다 교회에 가셔서 기도하신다. 아빠를 돌보시느라 힘에 부치실텐데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신다. 그렇게 계속 감당하실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빠는 오히려 요즘 좀더 잘 드시고 잘 걸으신다. 딸이 와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그렇게 내가 온 좋은 영향이 있으면 된 것 같다.

잠시 동생들에게 숨통을 트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아픈 바람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마음을 쓰게한 것 같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달으며 겸손 또 겸손.

하나님을 믿는 우리 엄마, 아빠 감사하다. 우리 엄마는 하나님과 함께 안녕하시다. 그저 그 분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인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자가 감당할 달란트를 주셨다. 

어느 날, 부모님도 나도 이땅에서 이별하게 될 것이다. 그때를 기억하며 오늘도 사랑하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말하고 싶다. 엄마, 아빠가 계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미소짓자. 사랑하자. 감사하자.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