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 배우는 아름다운 삶의 비결 1. 길을 떠나는 용기 창세기 12:1-4 (뉴저지한마음 교회)
아브라함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게 하심으로 취약한 자가 되어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겠다. 취약해져야만 보이는 취약한 것들.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야.'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너를 큰 민족을 이룰것이다 하셨던 말씀.
전임 목사님의 기도책의 제목 "주여 당신으로 인하여 든든하였나이다."
마태복음 28장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겠다. 하신 말씀이 풀어서 말하면 '나의 방패이신 하나님'이다.
성서의 인물들이 들었던 말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이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하신 말씀
여행중에 작은 성전에 들어가서 30분정도 나를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 침묵속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우리 내면에 망가졌던 것을 고쳐주신다.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사라졌다. 나오다가 교회 게시판에서 발견한 얼굴. 임마누엘 칸트의 초상화 "나는 세상을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 그러나 가장 든든한 말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였다."
너로 말미암아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너는 복이 될지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것이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 주려고 했던 복이 그를 통해 흘러가는 것이다.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 충만은 헬라어로 넘치는 것이다. 내 속에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것은 주변에 있는 메마른 사람에게도 넘치는 것이다.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 나를 통해 흘러가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다.
Being for others. 디트리히 본회퍼가 한말.
하나님 저를 통해서 복이 흘러가게 해주세요. 라고 하라.
의로운 사람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무엇을 원하냐? 충분해서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사람에게. 돈, 명예, 치유능력 등 다 필요없다고 한다. 가브리엘이 하나는 꼭 원해야한다고 하자, 그 사람은 '그 모든 아름다운 일이 저를 통해 이뤄지되 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다.
우리는 되돌아 오는 것을 바란다. 감사하는 인사라도. 그래서 선행이 덕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목회가 그만두고 싶은적 없습니까? 그 질문 속에는 그 질문자가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내가 경건한 목사라면 '나는 후회한 적없다' 했을텐데.. 저는 '나는 현장으로부터 백번도 더 벗어나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러자 젊은 목사들이 위로를 받더라.
40대 후반까지도 어렵게 느껴졌던 목회. 강단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나서 성도들이 변화하지 않을때 공허해진다. 힘들었다. 어린시절에 모내기한 논에서 새들이 우렁이 속을 파먹고 난 후에 우렁이 껍질이 떠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미지근한 물위에 떠있던. 목회현장을 떠나고 싶었다.
석양 예배(오후예배)를 마치고 4시쯤 되었을 때. 짜증이 날 것 같아서 무작정 나와서 아무 버스를 탔다.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해질녘 서산에 해가 저물며 물위에 비치는 것을 바라보며 '더이상 못하겠다. 이쯤에서 목회를 그만두어야겠다.' 라고 하는 순간 들려온 소리. "네 마음의 아픔을 내가 안다. 나는 너를 믿어." 그 말씀이 가슴에 울려왔다. 눈물이 났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는데... 절망, 실망, 열매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내 부탁을 너에게 맡긴 것을 네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말씀이 내 삶에 방패가 되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이다. 너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내속에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내속에 꿈을 이루신다. 믿는 모든 사람들 한사람한사람은 '하나님의 꿈'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꿈을 꾸고 이루신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 있다. 나는 아내의 유일한 남편이다. 라고 늘 생각한다. 그 생각하면 고맙다. 내가 해야할 일이 많다. 아들과 딸에게 나는 유일한 아빠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그들에게 갈 수 없는 사랑이 있다.
팬데믹 때 영상통화할 때 손녀가 한말. 빨리 할아버지에게 가서 할아버지를 만지고 싶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꿈이다. 이 상처난 세상을 고치는 일에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 오늘 본문에서 '너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는 통로이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아름다워진다.
정현정 시 - 비스듬히
사는게 다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나요. 저 공기를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나무를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게 많은데 기대는게 맑기도하니 우리또한 맑기도하고 흐리기도 하겠죠.
우리 인생으로 본다면... 누군가 나를 밝게 맞아줄 때 혹은 나를 외면할 때...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사람은 서로 기대고 사는 존재다. 기대는 존재가 중요하다.
우리는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난다. 우리의 기분이 상대에게 영향을 준다. "오늘 나와 마주한 사람이 내 눈빛을 통해서 ... 내 마음을 만나 따뜻해지게 ... 나와 만났기 때문에 살아갈 힘을 얻게 해주시고..." 그것이 친절하고 아끼는 삶. 내가 잘 산다는 것, 이웃사랑은 결국 내가 잘사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접촉하는 사람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내가 따뜻해지고 명랑해지고 밝아지는 것이 이웃사랑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갈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 떠났다 는 히브리어는 장소의 이동이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그런 삶을 살았다는 지속성이다. 인간은 계속 떠나야한다.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기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것인데. 자기의 경험, 지식으로 자기 세계관이 단단해진다. 공부를 한다고 하는 것은 그대와의 만남을 통해 나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할 때 열리는 것이다. 가르칠 것만 있고 배울 것은 없는 사람은 고집스러운 사람. 늘 가르치려는 사람. 말만하고 듣지 않는다. 복의 매개가 될 수 없다. 우린 자꾸 떠나야한다. 내 신념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수정해갈 수 있어야 사람이 맑아진다. 확신이라는 자기 울타리에 갇혀서 다른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장자, 우물안 개구리. 정중지와. 자기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가장 슬픈 것. 그렇게 크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작은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우주의 생명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 예수님 못지 않게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장 높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고통 받는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대서 스스로를 부정하게 했다. 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오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 주님에게 남이 없다. 우리의 상처, 고통, 외로움 모든 것을 주님이 받아 안으셨다. 그런 분은 없다. 남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 예수를 믿는 우리가 그렇게 작아지며 되겠는가. 아름다워야한다. 마음이, 눈이.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복의 근원으로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즉시 사는 곳을 떠나갔다. 우리의 자리에만 머물지 말고 나를 열고 받아들일때 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여러분은 떠남의 연속에 살아왔다. 떠나라고 하신 이유는 취약해지라는 말씀. 취약해져야만 보이는 세계를 볼 수 있다. 취약한 사람들을 보라.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가능성의 복을 현실로 누리는 사람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이웃에게 복이 흘러가도록. 이것이 복된 삶이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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